하늘과 대지가 맞닿아 있는 곳, 몽골 내몽골 여행후기

[신현수의 걷기여행 ⑥] 북경 잔장성, 후퉁, 찬디샤마을, 내몽골(상편)

글ㆍ사진 / 신현수(시인ㆍ부평고교 교사)

▲ 내몽골 광활한 초원을 지키는 유목민들의 이동식 전통가옥인 ‘게르’. 게르가 대지와 하늘을 이어주는 유일한 존재처럼 보인다.

8월 3일부터 7일까지 국제민주연대에서 진행한 북경 내몽골 ‘공정여행’을 다녀왔다. 공정여행이란 공정무역을 여행에 끌어들인 개념으로 일회용품을 최대한 쓰지 않는다든지, 장거리 여행 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항공이동을 자제한다든지, 지역 농산물을 먹는다든지,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친해지려고 노력한다든지, 그 지역의 문화를 최소한 알고 떠난다든지 등등의 개념이 들어간 여행을 말한다.

그러므로 공정여행은 착한 여행이고, 지속가능한 여행이고, 자연을 아끼는 여행이고, 환경을 지키는 여행이지만 그만큼 조금은 불편한 여행이기도 하다.

8월 3일 아침, 인천공항에 모여 목에 거는 이름표를 나눠줬는데 이름이 앞뒤에 있다. 목걸이 이름표는 쉽게 뒤로 돌아가 남의 이름을 보거나 내 이름을 보여주려면 꼭 뒤집어야했다. 아! 그래 이거다. 만드는 사람만 잠시 수고하면 여러 사람이 편할 수 있다. 난 불편하다는 생각만 해왔지 그걸 고칠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행은 늘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를 깨우친다.

인천공항에서 북경까지는 1시간 40분쯤 걸렸다.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려놓았다. 미국은 동부와 서부의 시간대가 다르다. 그런데 중국은 그 넓은 땅덩어리를 그냥 북경 한 도시로 통일했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서는 시간과 자연현상이 전혀 들어맞지 않는 곳도 있다.

그동안 중국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북경공항에 내려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항이름이 북경셔우두공항이라고 해서 ‘셔우두’가 무슨 뜻인가 했더니 ‘수도’라는 뜻이다.

맨 처음 간 곳은 잔장성이다. 공항에서 잔장성까지 1시간쯤 걸린다는데 차가 무지 막혔다. 잔장성은 만리장성 중에서도 관광객들이 전혀 가지 않는 곳으로, 장성의 옛 모습이 가장 잘 남아 있다. 농민 출신이었던 이자성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북경으로 진격했을 때 통과했던 곳이라고 한다. 만리장성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관광용 케이블카가 설치돼있는 팔달령 장성인데 잔장성은 팔달령 장성의 일부다.

▲ 잔장성 위에 선 필자.

만리장성은 총길이가 6352km로 하북성 산해관부터 감숙성 자위관에 이르는 장성인데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지어낸 얘기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단둥 근교의 호산장성 유적을 만리장성의 동쪽 끝으로 재해석하고 있는데 그것도 사실은 고구려성을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이다.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방어에 도움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장성의 규모는 놀랄만하다.

잔장성 근처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30여명 이상 규모의 손님은 난생 처음 받아본다는 식당 주인은 약간 당황한 듯했으나 그래도 계속 음식을 내왔다. 어떤 음식이 언제 더 나올지 전혀 모르니 당황스럽다. 공포의 ‘향채’는 뺐다고는 하나 그래도 어디 우리 음식 같겠는가. 여행 떠나오기 전에는 늘 현지 음식을 먹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와보면 잘 안 된다. 음식은 특히 중국이 제일 어렵다. 나중에는 식사시간이 즐거운 게 아니라 부담스러워진다. 동네 아이들의 따뜻하고 호기심어린 태도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점심을 먹으니 3시도 넘었다. 6시간 넘게 버스를 탄 후 타이푸스치 초원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중이다. 타이푸스치 초원은 내몽고의 여러 도시 중 북경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도 멀다. 아니 사실 중국에서 6시간 거리는 별건 아니다.

▲ 전통 복장을 하고 말 젖으로 만든 술인 마유주를 한잔씩 따라주는 내몽고 타이푸스치 초원의 현지인들.

현지인들은 환대했다. 흰색 천 ‘하다’를 목에 걸어주었고, 마유주를 한잔씩 따라 주었다. 반가운 손님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베푸는 몽골식 예절이다. 말 젖으로 만든 술인 마유주는 그동안 내가 먹어본 술 중 가장 독하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게르’에 짐을 풀었다. 몽골 유목민들의 이동식 전통가옥인 게르는 말하자면 천막텐트라고 할 수 있는데 게르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몸을 눕힐 수 있게 얼기설기 짜놓은 침대(라고도 할 수 없지만)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니 당연히 몹시 불편하다. 어쨌든 저녁을 먹고 몸을 뉘였다. 새벽 4시 반쯤에 일어나 하루 동안 참 먼 곳까지 왔다.

▲ 슬픈 전설을 간직한 몽골의 대표적 악기인 마두금을 연주하는 모습.

다음 날 초원에는 게르 천장 틈으로 새들어올 만큼 밤새 많은 비가 내렸다. 1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비가 이토록 내리다니 운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안내원은 자기가 5년 동안 20번 정도 내몽골에 왔는데, 이런 비는 처음이라고 했다. 이 비를 맞고 말들의 양식인 초원의 풀은 쑥쑥 자랄 것이니 현지인들은 좋아한다. 1년에 한두 번 올까말까 하는 비를 맞고 있으니, 비록 몽골 초원 위에 뜬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만개의 별은 못 보게 될지라도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새벽에 일어나 비를 맞으며 게르 뒤편 언덕에 있는 ‘오보(=돌을 쌓아 만든 숭배물 또는 제단)’까지 초원 위를 걸었다. 사실 똑같은 초원인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풀의 모습이 다 다르고 또한 온갖 생명체가 살아 숨 쉰다.

▲ 언덕 위 ‘오보(=돌을 쌓아 만든 숭배물 또는 제단)’뒤 아래로 몽골 유목민들의 이동식 전통가옥인 게르가 보인다.

언제 죽은 누구의 영혼인지 새 한 마리가 오보 주위를 떠나지 않고 비를 맞고 있다. 아침을 먹고 났는데도 비는 그칠 줄 모른다. 별은 커녕, 이러다가 말도 못타보고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일단 오후 일정과 바꿔서 몽골 가정집을 방문했다. 주인에게 차도 얻어 마시고 얘기도 나눴다.

젖도 짜보고 방금 짜낸 우유도 데워 마셨다. 치즈도 만들어 봤다. 비록 형식적일지라도 언제 다시 이런 경험을 해보겠는가. 몽골 아기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문틈으로 우리를 내다보는 사이 놀랍게도 날이 개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10명씩 돌아가면서 한 시간쯤 말을 탔다. 말은 제주도 가서 잠깐 타봤지만 1시간 이상 타 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약간 익숙해지려니 내릴 때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강희제가 모자를 떨어뜨렸다는 마라까마절에 가서 잠깐 절 구경을 하고 절 뒤편 오보로 올라가서 세 바퀴씩 돌면서 소원을 빌고 나서 멀리 초원을 내려다보는데 초원 풍경이 마치 그림엽서 같았다.

직접 초원으로 걸어 내려갔다가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났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과 붉은 황토 흙과 녹색의 풀들이 합쳐 만들어내는 초원을 보고 있으려니 괜스레 까닭 없이 눈물이 나온다.

▲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 타이푸스치 초원.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 발을 닦는데 갑자기 오한이 났다. 뜨거운 물은 당연히 없고 샴푸도 쓰면 안 되고 대충 물로 머리만 헹구고 다리를 닦다가 오한이 났다. 가져간 옷을 모두 껴입고 어제 밤에 받은 흰 천을 목에 두르고 했더니 약간 나아졌다. 여행에서 몸이 아프면 그것만큼 낭패스런 일이 없다.

밤에도 별은 없었다. 양고기를 먹으면서 간단한 민속공연을 보고 준비해 간 학용품도 전달했다. 이번 공정여행에서는 참가비의 1%를 몽골 학교에 기증했다. 마두금 연주와 노래와 말 타기 춤 등을 관람했다. 마두금은 말 그대로 말머리모양의 대표적인 몽골 악기인데 이 악기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에 수케라는 젊은이가 살았다. 어느 겨울 밤, 달빛 아래서 죽어가는 하얀 어미 말을 발견했다. 그 옆에는 눈처럼 하얀 모습의 갓 태어난 새끼 말도 있었다. 그는 말을 거두어 온갖 정성을 다해 기르며 조련했다.

수케는 마을의 나담축제에 참가하게 됐다. 그 마을 우두머리는 나담에서 꼭 이기기 위해 여기저기서 구해온 훌륭한 말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아무도 경주에서 그의 말을 이긴 적도, 이길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축제가 시작됐고 말들의 경주가 시작됐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수케가 사랑하는 백마가 마을 우두머리의 훌륭한 경주마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의 예고편이었다. 수케의 백마가 나담축제에서 영광의 우승을 안은 다음 날 밤 수케는 심장을 찌르는 듯한 말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백마가 보름날의 창백한 달빛 아래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온 몸에는 여러 개의 화살이 꽂혀 있었다. 수케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꼈고 말을 안고 통곡하다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 꿈속에서 수케는 그의 말을 만났다. “내 주인이시여! 상심하지 마세요. 당신이 나를 그리워할 것을 나는 압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악기를 선물해 드리려고 왔어요. 나의 꼬리털을 잘라 줄로 된 악기를 만드세요. 그리고 제가 그리울 때면 그것을 연주하세요” >

▲ 몽골 가정집에서 말 젖을 짜봤다.

비록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한 별은 뜨지 않았지만, 마유주와 맥주, 초원의 바람과 여행이 아니었으면 만나기 어려웠을 인연들과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 속에서 몽골 초원의 밤은 깊어갔다.

몽골 초원에서의 둘째 날 밤은 비대신 밤새도록 바람이 불었다. 옷을 모두 껴입었는데도 한 장밖에 없는 모포를 자꾸 끌어다 덮었다. ‘윙윙’하는 바람소리가 마치 한겨울에 들어본 소리 같다. 나중에 들으니 아침으로는 체감기온이 영상 6~7도까지 내려간다고 했다.

초원에서는 언제 비가 올지, 언제 세찬 바람이 불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초원에서는 자연에 순응해야한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자연에 맡겨야한다. 9월이면 우리가 머물렀던 게르 민박도 모두 철수한다고 한다.

▲ 젖을 짜는 것을 아이가 쳐다보고 있다.

게르 민박에서는 씻는 것도 문제지만 화장실은 더욱 문제였다. 소변이야 대충 처리하면 된다지만 대변이 문제였다. 남녀는 구분해 놓았지만 변기에 칸막이가 없었다. 며칠을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떠나는 날 아침 화장실에 갔는데 4개의 변기 중 3개에 이미 몽골인들이 쪼그리고 앉아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가끔은 끙끙거리면서 일을 보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나도 그냥 빈자리에 앉았다. 하기야 생각해보니 남자들의 경우 소변을 보면서는 서로 얘기를 주고받지 않나? 소변은 되면서 대변은 안 될 건 또 뭔가?

이제 초원을 떠날 시간. 모든 이별은 슬프다. 비록 2박3일이지만 몽골 청년들이 우리들에게 보여줬던 따뜻한 마음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다음 호에 하편 계속>

하늘과 대지가 맞닿아 있는 곳,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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