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원 위 이정표, 오색돌탑 ‘오보’
‘오보’란 흙이나 돌을 원추형으로 쌓아 올리고 그 상부에 버드나무 가지 한 묶음을 꽂아 두거나 나무 막대를 세워 놓은 것을 말한다. 오보를 통과하는 사람은 반드시 말에서 내려 이에 절하고 지나가며 오보의 나뭇가지에 공물로 예백을 걸어 놓거나 오보에 돌을 던져 기원하기도 한다.
아마 몽골족의 풍물치고 오보만큼 널리 퍼져있으면서 민족적 유대를 과시하는 풍물은 더 없을 것이다. 중국의 내몽골이나 신장, 바이칼 부근의 부리야트, 티베트와 히말리아 산록, 그 어디나 몽골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영락없이 오보가 있다. 그 속에 몽골사람들의 전통적 의식구조와 심성이 오롯이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보는 늘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원래 ‘오보’라는 말은 투르크어 ‘오바’에 연유되었다고 하는 일설이 있다. 오보가 언제부터 있어 왔는지도 명확한 해답이 없다. 몽골에 관한 지고의 문헌이라고 하는 <몽골비사>에도 오보 위에 장식하는 천인 잘라마는 소개되고 있으나 오보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비록 고대의 문헌기록은 없지만, 여러 가지 구전이나 청대 이후의 기록, 그리고 근대 서양인들의 기행문 등을 통해서 그 역사적 실체가 상당히 밝혀졌다. 오보는 16세기 라마교가 들어오기 전에 샤먼신앙에서 유래해 존재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래한 불교가 종래의 샤만 습성을 죄다 부정하면서도 유독 오보나 오보제만은 허용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불승들은 샤만을 대신해 희생 제물도 마다하지 않은 채 오보제의 주재권을 넘겨받아 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은 그토록 뿌리 깊은 전통적 습성을 무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에서였을 것이다.
몽골의 오보는 대개 고개나 산꼭대기, 강가뿐만 아니라 기묘한 모양새를 한 언덕이나 바위 등에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이 설치된 곳은 사방이 탁 트인 산꼭대기다. 오보를 장식하는 잘라마도 파란색을 위주로 한 갖가지 색깔의 천조각으로서 오보를 휘감거나 꼭대기에서 내리드리워 그 조형미를 한결 돋보이게 한다.
오보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에 따라 삼림오보와 초원오보로 나눌 수 있으며, 숫자에 따라 형태가 구분되기도 한다. 크게는 독립오보와 13오보, 군락오보로 나눠지는데, 독립오보는 문자 그대로 홀로 서있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행정 단위인 기(旗)나 숨(군)을 대표하는 오보, 씨족오보, 공동체오보 등이 속한다. 흥미로운 것은 13신을 상징하는 13오보인데, 중심오보를 가운데 놓고 좌우 일렬로 6개씩이나, 아니면 동서남북 십자형으로 4개씩을 배치해 총 13개의 오보를 이룬다. 군락오보는 3이나 9, 108처럼 셀 수 있는 숫자와 셀 수 없는 숫자의 오보를 많이 거느리는 경우를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오보를 구성하는 재질에 따라 돌오보와 나무오보, 흙오보로 구분한다. 이런 것은 지역 고유의 지질적 특성을 고려한 구분으로서, 심지어 가족단위로 만드는 임시적 눈오보도 있다. 또한 바치는 제수품에 따라 전통적 제수품만이 허용되는 오보와 여기에 더해 가축의 뼈나 털이 놓이는 오보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간혹 헌 옷이나 목발, 유모차 등 낡은 일용품이 놓여있는 오보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은 액땜 같은 개인의 절박한 소원이 담긴 물품으로서 허용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행정구역 별로 세우는 대표적 오보가 있는데, 이런 오보는 한 지역에 하나밖에 없으며 꼭 정기적인 오보제가 행해진다. 이정표오보는 대체로 고개나 교차로에, 경계오보는 구릉에 세워지는데, 제사를 지내는 오보와는 달리 사람들이 접근해 술이나 우유를 바치며 탑돌이를 할 수 있다. 술이나 우유를 바칠 때는 하늘과 땅, 사람을 위해 세 잔을 세 번 공중에 뿌린다. 탑돌이는 해가 도는 방향을 따라 세 차례 돈 다음 돌 하나를 집어 오보에 던진다. 신앙대상으로 되고 있는 오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땅이나 강 등의 정령(精靈)이 산다는 지방신 오보와 조상숭배의 유습이 스며있는 씨족오보다. 그밖에 특정 사적을 기리기 위한 공동체오보나 개인의 기원을 목적으로 한 개인오보도 이러한 신앙대상오보에 속한다.

2014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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