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중국 여행 10. 실크로드 (6) (2015. 7. 25. – 8. 2.) – 둔황 막고굴, 둔황석굴 문물진열관, 명사산, 월아천, 둔황시박물관 차마고도·동티벳 여행후기

신현수의 중국 여행 10. 실크로드 (6) (2015. 7. 25. – 8. 2.) – 둔황 막고굴, 둔황석굴 문물진열관, 명사산, 월아천, 둔황시박물관

2016년. 7월 30일 (목) 여섯째날

월아천

<사진 심영주>

 

 

류웬을 새벽 5시에 출발해 두어시간을 달려 드디어 둔황시에 도착해 아침을 먹었다. 실크로드, 명사산과 월아천. 정말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결국 살아서 둔황을 보는구나.

둔황은 ‘크게 번성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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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실크로드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둔황 막고굴 가기 전에 3D 홍보영화를 봤다. 상영 시설이 서양 못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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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고굴 가는 전용버스를 탔는데 버스도 최고급이다.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 드디어 막고굴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그런데 하이라이트는 막고굴 뿐만이 아니다. 날씨도 하이라이트, 장난이 아니다. 40도도 넘을듯하다. 잠시 서있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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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막에서 살며, 굴을 파며, 기도하며, 그림을 그린 천년 전의 사람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모든 것이 놀랍기만 하다. 명사산도, 월아천도, 사원도, 믿음도, 종교도, 동물도, 그리하여 결국 사람도.
막고굴의 벽화들을 1미터 폭으로 나열하면 무려 45킬로미터나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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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산은 말 그대로 모래에서 울음소리가 나는 산이다. 고비사막의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사막이다. 천년 동안 목숨을 걸고 실크로드 사막을 걷던 나그네들에게 월아천은 얼마나 반가운 오아시스였을까? 천년 동안 끄떡없던 월아천의 물이 요즘 점점 말라가고 있다고 한다. 현대 인류가  어머니 대지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건가? 메르스 때문에 명사산까지 가서 낙타를 못 타본 게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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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막고굴 유물 전시센터로 갔다. 막고굴과 막고굴에서 나온 유물들을 재현해 놓거나 , 발굴 당시 사진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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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여행 내내 쓰고 다니던 모자를 이날 잃어버렸다. 등뒤에 매달려 있는 줄 알았는데, 없었다. 역산해 보니, 막고굴 구경하고 나오는 바로 요 셔틀버스에 두고 내렸다. 42도가 넘어가니 내가 더위 먹은 게 분명하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오직 사막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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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여행하고 있는 경미한테 선물로 받은 모자라 더 민망하다. 경미는 국제민주연대 공정여행사업단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는데, 없는 돈에 사준 선물을 잃어버렸으니 더 미안하다. 내가 액땜한 일로 이번 여행에서는 그 누구도 물건을 분실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하기야, 앞에서도 말했지만 너무 놀란 일이라 또 애기 하지면, 란저우야시장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허리에 메고 다니는 내 가방을 보니 쟈크가 열려 있었다. 나는 가슴이 또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여권은 있었다. 내가 열고 안 닫았는지, 아니면 정말로 어떤 소매치기 ××가 훔쳐가려다 실패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십년감수. 여권을 바로 바지 앞주머니에 넣었는데, 그것도 몹시 신경 쓰이고 불편했다. 나처럼 A4형 ‘소심남’은 여권 잃어버릴까봐 여행가기 싫다. 여권은 바지 주머니에 넣는 게 안전할까, 아니면 그래도 가방에 넣는 게 안전할까? 제발 알려주세요. 다음은 에스엔에스에 올라온 댓글들. “가이드한테 맡기시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될긴데요, 안전하게 공안에게 맡기십시오. 읭? 물건 한 두 개는 잃어버려야 진정한 여행자. 女權은 여자분에게 맡기세요. 형 불알에 매달고 다녀. 배낭 안주머니요..아니면 힙쌕 자크달린 안주머니..단..아무데서도 풀러놓으심 절대 앙대요~~”

 돈황 시내로 나와 돈황시박물관으로 갔다. 아마도 막고굴에서 봤던 비파 든 여인이 돈황시의 상징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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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중국 서민들이 가는, 목욕탕(이라고도 할 수 없는)에서 샤워를 했다. 그것도 간신히 찾았다. 그래도 샤워라도 하고 나니 기분이 좋다. 동네 수퍼에 가서 잽싸게 맥주 한 잔 했는데 그렇게 달 수가 없다. 맥주를 팔던 소녀는 마치 외국인을 처음 보는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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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류웬에서 둔황으로 들어갈 때는 해뜨기 전이라 아무 것도 안보여 몰랐는데, 나올 때보니 2시간 넘게 달려도 보이는 건 오직 사막 뿐이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고비사막인가? 사막 모래 끝에는 지평선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고, 이글거리는 태양만 버스 뒤꽁무니를 따라오고, 가끔씩 부는 사막의 바람만 모래를 휘갈길 뿐, 정말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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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내렸던 류웬역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또 기차를 탔다. 오늘밤은 투룬판까지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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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천에 펼쳐진 세계 최고의 불교유적과 사막, 둔황

둔황은 감숙성서부 주천지구와 하서주랑서쪽 끝, 당하유역 사막지대에 위치해 있다. 막고굴은 돈황에서 남쪽으로 25km 거리에 있다. 둔황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고대의 동서교역·문화교류 및 중국의 서역 경영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BC 1세기 초에 한나라의 무제는 이곳을 서역 진출의 전진기지로 삼아 둔황군을 두고 부근에 옥문관과 양관의 두 관문을 설치했다. 둔황은 서쪽 끝에 위치한 까닭에 서역으로부터 오는 3개의 육로통상 노선이 모두 통하는 허브였다. 이는 둔황이 국제 무역도시로 번영하는 촉진제가 되었다. 그후 춘추시대에는 과주, 당나라 때는 사주로 개칭하여 동서무역의 요지로 삼았다.

 

* 492개 세계 최대의 불교 석굴군,세계문화유산 막고굴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둔황에는 구법승, 대상, 병사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어서 경제적인 융성뿐만 아니라 둔황 예술을 꽃 피우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 막고굴이다. 이곳은 중국 4대 석굴 중 하나이며, 기원전 전한 시대부터 당나라 후기까지 의 불교 유물들이 있다. 서기 366년 승려 약준이 명사산과 삼위산에 이상한 빛이 있음을 알고 석벽을 파서 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1,000개의 굴이 있다 하여 천불동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는 굴마다 불상의 형태나 벽화의 내용이 다르다.  막고굴의 상징인 9층루 안에는 둔황에서 가장 큰 불상인 미륵대불이 있고, 17번 굴에는 신라시대 혜초 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과 5만점의 고문서가 잘 보전되어 있다. 오랜 대자연의 풍파와 역사적 파괴가 있었지만, 전 세계의 현존하는 불교예술의 ‘가장 위대한 보고’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다. 막고굴은 4세기 중엽인 366년, 전진의 승려 낙준에 의하여 시작되어 13세기까지 지속되었고, 현재 4백69개의 석실이 보존되어 있다. 청나라 말기 이곳의 주지이던 왕원록 도사가 동굴을 보수하려다가 숨겨진 석실을 발견하였는데, 그 안에는 4만 여점의 고문서가 있었다. 이 문서들은 1907년, 1909년에 영국의 스타인 및 프랑스인 폴 펠리오 등에 의하여 해외로 탈취 당했다. 우리나라의 혜초 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 있었는데 펠리오에 의해 프랑스로 반출되었다. 이후 일본, 소련, 미국 등서도 문서는 물론 벽화까지 뜯어가고 현재는 몇 천 점의 문서와 불완전한 벽화만 남았다. 결국 9백년간 잠자던 문화유산은 발굴과 동시에 전 세계로 흩어져 고아가 되고 만 것이다. 1천여개가 넘는 석굴과 1천여개에 이르는 승려들의 숙소 등 한창때에는 2천개가 넘는 석굴이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슬람이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일부 무슬림에 의해 불교 유적지가 훼손되지 시작했다. 막고굴 뿐만 아니다. 신장 지역에 분포한 유명한 불교 석굴들 대부분이 훼손과 약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막고굴 17호기에서 나온 일명 장경동 문물은 대부분 제국주의 국가에게 약탈당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이 곳은 문서는 3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관청, 사원, 사가의 고사본 및 각본 등이다. 이슬람 교도들의 벽화 파괴의 모습으로 벽화를 긁고, 심지어 부처상의 눈알을 파내 버렸다. 독일, 일본 등 당시 제국국가 탐험대들은 문서 약탈도 모자라 벽화를 잔인하게 뜯어갔다. 대부분 불교, 도교, 마니교, 경교(고대 기독교의 한 종파)의 문헌과 유가의 전적, 문학자료, 정치·군사자료, 사회·경제 자료, 역사·지리 자료, 천문, 인쇄술, 의학 등의 과학기술 자료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장경동의 발견은 중국문화사의 20세기 인류문화사에서 중대한 발견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곧바로 외국에게 약탈당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소문은 당시 실크로드를 탐험하던 외국 학자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고문서를 손에 넣기 위해 영국의 스타인, 프랑스의 펠리오 등이 첫번째, 두번째로 이 곳을 다녀갔고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자료를 손에 넣게 되었다. 사막속의 문서, 천고의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사료는 사막이라는 특수한 환경과 더불어 모험심에 불타는 인간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당시의 부패한 청 조정은 외세에 침범당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도 약간 늦기는 했지만 얼마간의 고문서를 구했다. 소련과 미국 등도 문서와 예술, 심지어 벽화까지 탁본해 갔다. 현재 중국에는 몇천점의 불완전한 문서만 보관돼 있을 뿐, 9백년 간 잠자던 문화유산은 발견됨과 동시에 거의 다 해외로 흩어져 버린 것이다.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돈황 막고굴 이외에도 신장 곳곳에 위치한 커즈얼 석굴, 베제크릭 석굴 등에서는 석굴 내에 불상은 물론 벽화 등을 통째로 뜯어가기도 했다. 일본 오타니 탐험대가 신장 일대에서 약탈한 문물 중 일부는 당시 조선총독부에 보관됐다가 해방 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분류돼 지금까지 한국 땅에 남아 있다. 뜻하지 않게 우리나라도 8대 유물보유국이 됐다.

 

*  왕오천축국전

왕오천축국전은 신라의 승려 혜초(704~780)가 서기 720년대에 인도 전 지역의 불적을 순례하면서 각 지방의 풍토와 산물을 살펴 기술한 글이다. 바로 왕이 사는 다섯군데 천축국을 돌아다니며 느낀 것을 서술한 일종의 기행기다. 중국 돈황을 거쳐 주로 인도 북부지방을 여행했으며 지금의 파키스탄과 아프칸니스탄, 이란의 쉬라즈까지 다녀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돈황에서 발견된 이 사본은 비록 혜초 자신이 8세기에 직접 친필로 쓴 것이 아니라 9세기경 누군가에 의해 베껴진 것이며, 원본 3권 전체가 아니고 두루마리 모양의 첫머리와 끄트러미도 떨어져 나가고 없는 잔본이기는 하지만, 8세기 전반의 인도 불교 및 중앙아시아의 풍속과 지리, 역사 등을 알려주는 서역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는 책이다. 책의 기술이 상세하기 때문에 법현의 불국기와 현장의 대당서역기 등과 상호 보충이 되어 학술 가치도 대단히 높으며, 또 중서교통사 및 중앙아시아사 연구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무엇보다 고대 신라인의 기록으로서, 우리의 고전으로 남아 있는 최고의 보물이라는 데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

 

* 막고굴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살필 수 있는 – 둔황석굴 문물진열관

 

* 총면적800㎢의 거대한 사막, 명사산 (鸣沙山)

고비사막의 작은 모래와 돌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총 면적 800km2의 거대한 사막이다. 평균 높이는 100m이지만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715m이다. 이 산은 굽은 고리 모양의 형태이고, 산등성이는 칼처럼 날카롭다. 가벼운 바람이 불면 얇은 소리를, 심한 바람이 불면 거대한 소리를 낸다 하여 鳴(소리낼 명), 沙(모래 사) 산이라고 부른다. 이 산의 모래는 적∙황∙녹∙흑∙백 5가지 색깔이 있다고 해서 ‘오색사(五色沙)’라고도 한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이나 일몰은 천하의 절경이다.낙타를 타고 명사산 중턱까지 올라갈 수 있고, 정상까지는 걸어 올라가야 한다.

 

* 3천년 동안 마르지 않은 사막의 오아시스 – 월아천

월아천은 밍사산 사막 중간에 위치한 오아시스로 초승달 모양의 호수가 유명하다. 예전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들의 쉼터로, 불교 사원으로 사용됐던 이 곳은 천년동안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 실크로드와 둔황 지역의 역사, 문화가 잘 정리되어 있는 – 둔황시박물관

* 침대기차 숙박 (둔황 ->신장위구르자치구 투루판 이동)

[출처] 신현수의 중국 여행 10. 실크로드 (6) (2015. 7. 25. – 8. 2.) – 둔황 막고굴, 둔황석굴 문물진열관, 명사산, 월아천, 둔황시박물관 (신현수의시와삶) |작성자 신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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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수의 중국 여행 10. 실크로드 (6) (2015. 7. 25. – 8. 2.) – 둔황 막고굴, 둔황석굴 문물진열관, 명사산, 월아천, 둔황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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